Polestarart Gallery
전시기간 : 2022년 07월 26일 ~ 2022년 08월 13일 참여작가 : 로렌정, 황유윤, 리므이 전시장소 : Polestarart Gallery 서울시 성동구 서울숲6길 17 폴스타아트 갤러리
꿈 레시피
Dream Recipe
<꿈 레시피>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 우주로 날아간 꿈이 있었다.
그것은 태양계 너머의 머나먼 어느 곳에 살고 있을 어떤 존재들과 지금 이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보내는 인사와 사랑의 꿈이었다.

   1977년, 보이저(Voyager)라는 이름의 무인 우주탐사선이 우주로 발사되었다. 각각 8월 20일과 9월 5일에 쏘아 올려진 보이저 1호와 보이저 2호의 원래 임무는 목성의 위성들과 토성의 아름다운 고리들을 탐사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외행성계를 돌다 태양계를 벗어날 때까지 4년간 활동 예정이었던 이 쌍둥이 탐사선은 계획보다 무려 10배가 넘는 시간 동안 별과 별 사이의 무한한 우주를 여행 중이다. 

   두 보이저호에는 금박을 입힌 구리 레코드판이 장착되어 있다. 각 레코드판에는 지구와 우리 문명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 세계 최고의 음악들, 지구와 생명의 진화의 소리를 포착한 소리 에세이, 미국 대통령과 유엔 사무총장의 인사말, 그리고 약 60가지 언어로 녹음된 인사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온갖 감정적 정서와 문화적 다양성을 자랑하는 지구상 최고의 음악만을 담아내려고 한 음악 목록에는 모차르트의 아리아와 베토벤의 교향곡과 같은 클래식뿐만 아니라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의 백파이프 연주곡, 자이르 피그미 소녀들의 성년식 노래, 또 루이 암스트롱의 「멜랑콜리 블루스」 등이 담겨 있으며, 거기에는 심지어 고래들의 ‘노래’도 있다. 더불어 「지구의 소리들」이라는 소리 에세이에는 화산과 지진, 바람과 파도, 새와 침팬지, 발자국 소리, 심장 뛰는 소리, 웃음소리 등이 들어있다. 따라서 이 황금 레코드판은 단순히 우리 문명의 발전을 나열하는 역사적 기록이 아닌, 우리의 소리, 과학, 영상, 음악, 생각과 감정을 망라하는 하나의 상징과도 같다. 우주와 인류, 지금 이 순간 함께 생존하고 미래에 태어나게 될 헤아릴 수 없는 생명들을 위한 귀중한 꿈들이 ‘영원’의 공간에서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범우주적 서사는 꽤나 웅장하고 그 범위는 너무나 광활해서 머나먼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지금 우리 모두의 존재를 설명하는 과학적이고도 낭만적인 이야기로써,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 

   2022년 여름 이곳, 각자의 우주를 떠돌며 자신만의 <꿈 레시피>를 써 내려가는 세 명의 작가가 있다. 새로운 Summer Holiday 시리즈에서 모험적이고 즉흥적인 사랑의 경험을 한 장의 여름으로 묘사하는 로렌정 작가는 그 몽롱한 풍경 속에 선별된 단어들을 떠올려 보내며, 막연한 꿈들에 구체적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작가가 초대하는 매혹적인 낙원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이방인이 되기도 하고 서로에게 뺨을 맞대는 하나가 되기도 한다. 황유윤 작가는 제 역할을 끝낸 후 어딘가 흐트러진, 혹은 잠시 쉬고 있는 사물들에 주목한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그 사물들은 연극이 끝난 뒤 불이 꺼진 무대 뒤에 남겨져 있다가, 갑작스레 손전등 불빛에 비춰져 살짝 놀란 듯 보이기도, 발견되어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강렬한 색감을 더욱 뽐내는 듯 보이기도 한다. 서늘한 공기가 맴도는 화면 속 그곳에서 나지막한 축하의 멜로디가 들려오며 가냘프지만 다정한 말소리가 속삭인다. 함께 꿈의 노래를 부르지 않겠느냐고. 그 꿈의 노래는 리므이 작가의 몽상 속에서 이어진다. 달빛 아래서 지그시 눈을 감고 어딘지 알 수 없는 공간을 소요하거나 선잠에 머물러 있는, 또는 우아하게 춤을 추는 인물들은 「지구의 소리들」이 재생되고 있는 저 은하수 너머로 우리를 이끌고 있는 것만 같다. 그 속에서 잔잔한 달빛과 바람의 소리, 보글거리는 물거품 소리, 반짝거리는 물비늘 소리가 들려온다. 

   꿈의 언어. 꿈의 소리. 그것이 지닌 힘은 막강하다. 더 넓은 세계와 그 안에 담긴 진정성을 향유하기 위해, 누군가의 영혼이 아플 때 위로하고 치유하기 위해, 또 사랑하는 이들을 더 따뜻하게 품어내기 위해 우리는 꿈을 꾸며 각자의 언어를 선택한다. 때때로 우리는 자기 앞에 놓인 당장의 이익에 몰두하다가 변치 않는 것들을 잃어버리거나 파괴하고는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보이저호의 레코드판처럼 희미한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이 아름다운 꿈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해 기록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록은 때가 차오르면 하나씩 꺼내어 볼 수 있는 꿈 레시피가 될 것이다. 금세 휘발되어 버리는 꿈의 조각들을 그러모으고 잘 버무려 요리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가능했던 깊은 잠의 꿈에서 깨어날 때 모든 게 없었던 일이 되지 않도록. 일장춘몽이 아닌 영원의 꿈이 되도록.

   보이저호가 싣고 떠난 내용은 머나먼 미래, 미지의 시공간에서 맞닥뜨릴지 모르는 외계 문명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지금을 이루는 우리에게 건네는 세심한 예고이자 부드러운 각성의 경고이기도 하다. 천문학자이자 이 황금 레코드판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인 칼 세이건이 말했듯이 *우리 사회는 일시적인 존재이며 우리가 익힌 기술과 지혜는 미약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미 자멸한 것인지 혹은 더 위대한 존재로 발전해 온 것인지 짐작하기는 어려우며, 그럼에도 명료하게 드러나는 사실은, 우리는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열정을 품은 존재이며 희망과 인내를, 상당한 아량을, 그리고 미지의 것들에게 안부를 묻고자 하는 뚜렷한 열의를 지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각성한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분절된 삶의 선상에서 각자의 꿈 레시피를 형성하려 애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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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 커다란 밤이 찾아올 때가 있다. 영원히 이어질 듯 끈끈하게 늘어붙어 있고, 목을 짓누를 듯이 육중한 밤. 그럴 때 우리는 텁텁한 공기 속을 헤매며 비틀거린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도 머지않아 하늘이 다시 밝아올 것을 믿고 기다린다. 어느 인도자가 불빛과 함께 찾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두터운 어둠이 잦아들며 벌어진 틈새로 여명이 스며들기 시작할 즈음, 우리는 그 어슴푸레한 공기 속에서 또다시 꿈을 꾸기 시작한다. 희망과 인내와 아량을 품은 채, 다른 것들의 안위를 살피는 마음으로. 

   오늘 여기, 반짝이는 웃음소리가 흩뿌려지고, 포근한 밤의 온기 속에서 따끈하게 구워진 세 작가의 세계가 있다. 그들만의 달콤 쌉싸름한 레시피를 맛본 후 각자의 꿈 레시피를 적어내려갈 수 있기를, 그리고 그 꿈을 향기롭게 피워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우리의 꿈으로 차곡차곡 채워진 꿈 레시피, 그것은 빛나는 영광의 종이에 새겨져 보이저호처럼 영원의 공간으로 나아갈 것이다. 
동틀 녘 하늘 아득한 곳에서 황홀하게 반짝거리고 있는 저기 저것, 저것이 바로 우리가 함께 꾸는 꿈이다.

글: 김정윤

*칼 세이건, 「지구의 속삭임」, 에필로그 참고